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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평/영화

삶이란 흐르는 강물처럼 의미 해석 넷플릭스

by 블코 bluebyco 2025.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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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어디로 흐르는 걸까?

모든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소설 원작

<흐르는 강물처럼>

 

1. 줄거리

2. 보게된 계기, 줄거리 덧붙임

3. 흐르는 강물처럼 해석

©글 블코

 


줄거리

영화 내레이션 하는 남자(노먼)의 전반적인 삶을 흐르듯이 보여준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몬태나에 살던 목사의 아들이다. 그에겐 남동생(폴)이 있다. 아버지는 노먼과 폴을 데리고 플라잉 피싱이라는 것을 가르치며 함께 시간을 보냈었다.

 

이후 노먼은 성인이 되고 도시에 있는 대학교로 6년간 있으며, 교수직에 신청하고 회신을 기다리는 동안 고향으로 다시 내려왔다. 그 사이 폴은 플라잉 낚시 기자가 되어 있으며, 성격도 더욱 다채로워졌다.

 

그리고 그들의 서사를 그린 이야기다.

 

보게된 계기, 줄거리 덧붙임

F1 영화를 보고 브래드 피트에게 더 반했다. 그의 다른 작품을 넷플릭스에서 찾다가 93년에 개봉한 <흐르는 강물처럼> 이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처음엔 브래드 피트만을 기다렸기 때문에, 그가 영화 초반에 왜 이렇게 나오지 않는지 답답했었다.

 

영화는 정말 물 흐르듯이 조용히 서정적으로 흘러간다. 2시간 내외의 시간에 모든 것을 다 넣으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인지, 영화에 나오는 모든 소품과 대사 하나하나까지 집중해서 보는 편이다.

 

폴과 노먼의 아버지 목사님은 책도 많이 읽으시고 여러 인사이트를 아들들에게 주려한다. 영화가 끝나고 생각해보면 그는 아이들에게 삶의 여정을 잘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언자였던 것 같다. 소설에 빗댄 상황, 편지에 적힌 내용들. 모두 한 곳으로 흘렀다.

 

폴은 어렸을 때부터 자신감있고 대담하며 용감하다. 남들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역할로 비춰지지만, 어떤 갈증은 있다. 어렸을 땐 "무모함" 이었으며, 성인이 되서는 "도박"이라는 걸 끊임없이 갈구한다.

 

가족 또는 친구들과 시간을 같이 보내는 듯 하지만, 폴은 금새 자리를 비우거나 어딘가로 떠난다. 플라잉 낚시로 열정적으로 무언갈 해보지만, 어딘가 채워지지 않는 듯해보인다. 경찰서를 여러번 오간다.

 

원주민들만 가는 술집에 굳이 가서 싸움을 일으키며, 떠나자는 노먼의 말에 먼저가라고 한다. 다음날 아침 조마조마하게 시계를 보는 노먼의 시선에 맞추어 폴이 능청스럽게 들어온다. 노먼과 폴 그리고 아버지가 같이 플라잉 낚시를 떠난다. 이 날 폴은 최고의 낚시로 최고의 물고기를 잡았다.

 

그리고 노먼은 경찰서를 한번 더 다녀오게 되었다. 폴이 권총을 맞아 뒷골목에서 죽었다는 것. 그 사실을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그들의 시간도 흐르게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내고, 이제는 아내까지 보낸 노먼.

 

그는 똑같은 장소 몬태나에서 마음속으로 그들을 품으며 플라잉 낚시를 한다.

 

흐르는 강물처럼 월척 성공한 폴

 

근데 진짜 정말 매력있는 사람이다. 정말 최고..

연기도 말투 표정 몸짓 다!!!

미소가 미쳤다. 으악

 


흐르는 강물처럼 해석

스포 O, 개인적인 생각

폴이 죽고, 노먼의 아버지, 어머니와 아내까지 죽고 그들을 회상하며 플라잉 낚시를 하는 노먼의 나이든 모습이 나온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의 전반적인 흐름을 플라잉 낚시라는 주제 하나로 서정적이게 풀었다.

 

노먼은 마지막 장면에 플라잉 낚시를 하는 모습을 보이며 이렇게 말한다.

 

"온전히 이해할 순 없어도 온전히 사랑할 순 있다. (...)

지금 이렇게 강물에 낚시를 하며 그들을 마음속에 담아둔다."

We can love completely what we cannot completely understand.

 

"결국 모든 것이 하나로 합쳐져 흐르는 강물이 된다."

Eventually, all things merge into one, and a river runs through it.

 

 

삶이란, 인생이란, 살아가는 것이란, 무엇일까?

어렸을 땐 알지 못했던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러나 죽음에 대한 더 잦은 익숙함.

가까운 누군가 세상을 떠났을 때 느꼈던 공허함과 무력함.

 

한 때 슬픔에 잠겨 인생에 회의적인 걸 느꼈었다.

언젠간 없어질 인생인데 지금의 삶이 의미가 있나 싶은.

 

영화가 전체적으로 한 사람의 삶을 아우르며, 처음과 끝을 암시하는게 좋았다. 우리의 삶과 같기 때문.

 

강물 근처에 있던 높은 나무, 5억년은 더 존재했을 지도 모를 큰 바위들.

그리고 그 사이를 좁게 또는 넓게 흘러가는 강물들.

결국 모든 것이 합쳐져 하나로 흐르게 된다.

 

내가 지금 존재하는 것도 단순히 '나'라서 존재하는게 아닌, 셀 수 없는 무수한 선택지를 거쳐 숨을 쉬고 있다는 것. 인생은 자신이 주체자이면서도 주변에게 영향을 받는 사회적인 커다란 세포덩어리.

 

나의 삶에 누군가 돌을 던져서 강물을 요동치게 수도 있고, 누군가는 플라잉 낚시로 나를 알아봐줄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자신의 강물을 이어줄 수도 있는.

 

그렇게 여러 갈래가 하나로 모인 우리 자체가

<흐르는 강물처럼>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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